明心寶鑑(명심보감) 順命篇(순명편) (14)
時來風送滕王閣,運去雷轟薦福碑。
운이 좋아서 때를 잘 만나면 왕발과 같이 이름을 드날릴 수도 있으며,
운이 다하면 가난한 선비와 같이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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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心寶鑑(명심보감) 順命篇(순명편) (14)
時來風送滕王閣,
시래풍송등왕각,
때가 오면 바람이 등왕각(滕王閣)으로 보내고,
(운(運)이 좋아서 때를 잘 만나면 바람이 등왕각(滕王閣)으로 왕발(王勃)을 보내기도 하지만,)
(운(運)이 좋아서 때를 잘 만나면 왕발(王勃)과 같이 이름을 드날릴 수도 있으며,)
運去雷轟薦福碑.
운거뢰굉천복비.
운(運)이 떠나면 천둥이 천복비(薦福碑)를 내리친다.
(운이 다하면 가난한 선비가 찾아간 날에 천둥이 내리쳐 천복비(薦福碑)를 부순다.)
(운이 다하면 가난한 선비와 같이 열심히 노력(努力)하더라도 좋은 결과(結果)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參考(참고):
- 등왕각(滕王閣)
등왕각(滕王閣)은 중국(中國) 강서성(江西省) 남창시(南昌市)에 있는 누각(樓閣)으로, 호북성(湖北省) 무한시(武汉市)의 황학루(黄鹤楼), 호남성(湖南省) 악양시(岳阳市)의 악양루(岳阳楼)와 함께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653년(年)에 당(唐) 고조(高祖) 이연(李渊)의 아들인 등왕(滕王) 이원영(李元嬰)이 처음 건립(建立)하였으며, 675년에 도독(都督)으로 부임(赴任)한 염백서(閻伯嶼)에 의(依)해 재건(再建)되었습니다.
염백서는 등왕각을 재건 후 낙성연(落成宴)을 베풀고 여러 문인(文人)들을 초청(招請)하여 글을 짓게 하였는데, 이때 지은 글들 중(中)에서 시인(詩人)이었던 왕발(王勃)이 지은 등왕각서(滕王閣序)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한 구절(句節)인 시래풍송등왕각(時來風送滕王閣)과 관련(關聯)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낙성연이 열리기 며칠 전(前), 왕발은 등왕각과 700여(餘) 리(里)나 떨어진 먼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발의 꿈에 백발(白髮)의 노인(老人)이 나타나더니, 등왕각의 낙성연에서 서문(序文)을 지으라는 말을 하고 사라졌습니다. 잠에서 깬 왕발은 기이(奇異)하게 생각하며 노인의 말을 따라 등왕각으로 출발(出發)하였으나, 낙성연이 열리는 날에 맞춰 도착(倒着)하기에는 도저(到底)히 불가능(不可能)한 거리(距離)였습니다.
그러나 때마침 부는 바람의 도움을 받아 700여리의 거리를 하룻밤 만에 달려 낙성연이 열리는 때에 맞추어 도착을 할 수 있었고, 이 자리에서 등왕각서라는 서문을 지어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습니다.
‘시래풍송등왕각’은 운(運) 좋게 바람이 부는 때를 잘 만나 등왕각의 낙성연에 참가(參加)할 수 있었고, 또 그곳에서 글을 지어 이름을 날리게 된 이 왕발의 이야기에서 유래(由來)된 글입니다.
※參考(참고):
- 천복비(薦福碑)
천복비는 강서성(江西省) 파양현(鄱陽縣)의 요주(饒州)에 있는 천복사(薦福寺) 안의 비석(碑石)입니다. 이북해(李北海)가 비문(碑文)을 짓고 구양순(歐陽詢)이 비문을 썼는데, 서체(書體)로 이름을 날리던 구양순의 작품(作品)이라 이 비문의 탁본(拓本)이 비싸게 팔렸습니다.
명심보감의 한 구절인 운거뢰굉천복비(運去雷轟薦福碑)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송(宋)나라의 어느 가난한 선비가 천복비의 비문을 탁본해서 가져오면 비싼 값으로 팔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고생(苦生)을 하며 겨우 천복사에 도착하였으나, 도착한 바로 그날 천둥이 내리쳐 비문이 산산(散散)조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 가난한 선비는 탁본을 얻지도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운거뢰굉천복비(運去雷轟薦福碑)는 천복비의 탁본을 얻기 위(爲)해 갖은 고생을 하였으나 얻지 못했던 어느 가난한 선비의 이야기에서 유래된 글입니다.
※出典(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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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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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원문) / 解釋(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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