囊中之錐.
낭중지추.
주머니 속의 송곳.
1) 능력(能力)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드러남을 비유(比喩)하는 말.
(사기(史記)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중에서……)
진(秦)나라가 쳐들어와 수도인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조(趙)나라의 왕은 평원군(平原君)에게 초(楚)나라로 가서 동맹을 하고 조나라를 도와줄 것을 요청(要請)하게 하였다.
평원군은 여러 식객들과 문하의 사람들 가운데 문무를 갖춘 뛰어난 역량이 있는 스무 명과 함께 가서 반드시 일을 성사시킨 뒤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였다.
평원군이 말하였다.
“도움을 청하는 문서로 쉽게 동맹을 맺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문서만으로 부족하다면, 초나라의 궁궐 아래에서 피를 발라서라도 진심을 보여주며 반드시 동맹을 맺고 돌아오겠습니다.
초나라에 함께 갈 사람들은 저의 식객들과 문하의 사람들 중에서만 고르더라도 충분합니다.”
열아홉 명을 고른 뒤 나머지 한 사람을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문하에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찾아뵙더니 평원군에게 스스로를 천거하며 말하였다.
“제가 듣기로는 평원군께서 초나라와 동맹을 하여 도움을 청하려고 하시며, 식객들과 문하의 사람들 중에서만 스무 명을 골라 함께 가겠다는 약속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지금 한 명이 부족하니 바라건대 저를 뽑아 주시기 바랍니다.”
평원군이 말하였다.
“선생(先生)은 나 조승(趙勝)의 문하에 머무른 지 지금까지 몇 년인가?”
모수가 말하였다.
“지금까지 삼 년 입니다.”
평원군이 말하였다.
“뛰어난 사람은 주머니 속에 송곳이 있는 것과 같아서, 그 송곳의 끝이 바로 드러난다네. 지금 선생은 나의 문하에 머무른 지 지금까지 삼 년이다. 주위의 사람들이 그대를 칭송하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하며, 나 또한 아직 그대를 칭송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는 선생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선생과는 함께 갈 수가 없으니 집에 계속 머물러 계시오.”
모수가 말하였다.
“저는 이제서야 주머니 속에 넣어달라고 청하는 것일 뿐입니다. 만일 제가 일찍 주머니 속에 머무를 수 있었다면 송곳의 끝 뿐만 아니라 송곳의 자루까지도 드러났을 것입니다.”
평원군은 결국 모수와 함께 동반하였다.
나머지 열아홉 명의 사람들은 서로 눈짓을 하며 모수를 계속 비웃었다.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조(趙)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위(魏)나라의 신릉군(信陵君), 초(楚)나라의 춘신군(春申君)을 전국시대(戰國時代) 사군(四君), 전국사군(戰國四君) 또는 전국사공자(戰國四公子)라고 합니다. 네 사람은 서로 경쟁(競爭)하듯 인재(人材)들을 모으고 그들을 후(厚)하게 대접(待接)하기를 즐겨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계명구도(鷄鳴狗盜), 장협귀래호(長鋏歸來乎)와 같은 고사성어(故事成語)는 이들 전국사군과 식객(食客)들의 이야기에서 유래(由來)된 것으로, 위기(危機)의 순간(瞬間)에는 식객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BC 257년(年),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침략(侵掠)하여 수도(首都)인 한단(邯鄲)을 포위(包圍)하자, 위기를 느낀 혜문왕(惠文王)은 아우인 평원군(平原君)을 초(楚)나라에 사신(使臣)으로 보내 동맹(同盟)을 맺으라는 지시(指示)를 하였습니다.
평원군은 식객(食客)과 문하(門下)의 사람들 중(中)에서 문무(文武)를 모두 갖춘 뛰어난 역량(力量)이 있는 스무 명(名)을 모아 함께 가려 하였습니다. 열아홉 명을 선발(選發)하고 마지막 한 명을 두고 고민(苦悶) 중이었는데, 이때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동행(同行)을 자청(自請)하였습니다.
평원군은 자기(自己)의 집에 머무른 지 3년 동안 이렇다 할 능력(能力)을 보여주지 못한 모수가 나선 것이 못마땅하였습니다. 그래서 평원군은 ‘현사(賢士), 즉(卽) 현명(賢明)한 선비는 주머니 속에 넣어둔 송곳의 뾰족한 끝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과 같아서 숨어 있더라도 드러나게 마련인데, 모수는 보여준 것이 없으니 능력이 없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모수는 주머니 속에 넣어주기만 한다면 자신의 능력은 송곳의 끝이 아니라 손잡이까지 드러날 것이라며 자신(自信) 있게 말을 하였고, 이 말을 들은 평원군은 결국 모수와 함께 가기로 결정(決定)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수의 활약(活躍)으로 큰 성과(成果)를 거두고 돌아왔습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로, 사기(史記)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출전(出典):
- 사기(史記)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원문(原文):
秦之圍邯鄲,趙使平原君求救,合從於楚,約與食客門下有勇力文武備具者二十人偕。平原君曰:「使文能取勝,則善矣。文不能取勝,則歃血於華屋之下,必得定從而還。士不外索,取於食客門下足矣。」得十九人,餘無可取者,無以滿二十人。門下有毛遂者,前,自贊於平原君曰:「遂聞君將合從於楚,約與食客門下二十人偕,不外索。今少一人,願君即以遂備員而行矣。」平原君曰:「先生處勝之門下幾年於此矣?」毛遂曰:「三年於此矣。」平原君曰:「夫賢士之處世也,譬若錐之處囊中,其末立見。今先生處勝之門下三年於此矣,左右未有所稱誦,勝未有所聞,是先生無所有也。先生不能,先生留。」毛遂曰:「臣乃今日請處囊中耳。使遂蚤得處囊中,乃穎脫而出,非特其末見而已。」平原君竟與毛遂偕。十九人相與目笑之而未廢也。
※원문(原文) / 해석(解釋):
秦之圍邯鄲 趙使平原君求救 合從於楚,
진지위한단 조사평원군구구 합종어초,
진(秦)나라가 한단(邯鄲)을 포위(包圍)하자, 조(趙)나라는 평원군(平原君)에게 초(楚)나라에 합종(合從)하여 도움을 구(求)하게 하니,
(진(秦)나라가 쳐들어와 수도(首都)인 한단(邯鄲)을 포위(包圍)하자, 조(趙)나라의 왕(王)은 평원군(平原君)에게 초(楚)나라로 가서 동맹(同盟)을 하고 조나라를 도와줄 것을 요청(要請)하게 하였다.)
約與食客門下有勇力文武備具者二十人偕.
약여식객문하유용력문무비구자이십인해.
식객(食客)과 문하(門下)의 용력(勇力)이 있고 문무(文武)가 모두 갖추어진 사람 스무 명(名)과 함께 가겠다고 약속(約束)하였다.
(평원군은 여러 식객(食客)들과 문하(門下)의 사람들 가운데 문무(文武)를 갖춘 뛰어난 역량(力量)이 있는 스무 명과 함께 가서 반드시 일을 성사(成事)시킨 뒤 돌아오겠다고 약속(約束)하였다.)
平原君曰.
평원군왈.
평원군이 말하였다.
使文能取勝 則善矣.
사문능취승 즉선의.
“만일(萬一) 문서(文書)가 승리(勝利)를 얻을 수 있다면 좋습니다.
(도움을 청(請)하는 문서(文書)로 쉽게 동맹(同盟)을 맺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文不能取勝 則歃血於華屋之下 必得定從而還.
문불능취승 즉삽혈어화옥지하 필득정종이환.
문서가 승리를 얻을 수 없다면, 궁궐(宮闕)의 아래에서 피를 마시더라도, 반드시 손에 넣어 합종을 확정(確定)시키고 돌아오겠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문서만으로 부족(不足)하다면, 초나라의 궁궐(宮闕) 아래에서 피를 발라서라도 진심(眞心)을 보여주며, 반드시 동맹을 맺고 돌아오겠습니다.)
士不外索 取於食客門下足矣.
사불외색 취어식객문하족의.
사람은 바깥에서 찾지 않고, 식객과 문하에서 취(取)하여도 충분(充分)합니다.”
(초나라에 함께 갈 사람들은 저의 식객들과 문하의 사람들 중(中)에서만 고르더라도 충분(充分)합니다.)
得十九人 餘無可取者 無以滿二十人.
득십구인 여무가취자 무이만이십인.
열아홉 명을 구하였으나, 나머지는 취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스무 명을 채울 수 없었다.
(열아홉 명을 고른 뒤, 나머지 한 사람을 두고 고민(苦悶)하고 있을 때였다.)
門下有毛遂者 前 自贊於平原君曰.
문하유모수자 전 자찬어평원군왈.
문하에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찾아뵙더니, 평원군에게 스스로를 천거(薦擧)하며 말하였다.
遂聞君將合從於楚,
수문군장합종어초,
“제가 듣기로는 군께서 장차(將次) 초나라와 합종하려고 하시며,
(제가 듣기로는 평원군께서 초나라와 동맹을 하여 도움을 청하려고 하시며,)
約與食客門下二十人偕 不外索.
약여식객문하이십인해 불외색.
식객과 문하의 스무 명과 함께 가고, 바깥에서 찾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식객들과 문하의 사람들 중에서만 스무 명을 골라 함께 가겠다는 약속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今少一人 願君即以遂備員而行矣.
금소일인 원군즉이수비원이행의.
지금(只今) 한 명이 부족하니, 바라건대 군께서는 바로 저로 인원(人員)을 채우고 가십시오.
(지금(只今) 한 명이 부족하니, 바라건대 저를 뽑아 주시기 바랍니다.)
平原君曰.
평원군왈.
평원군이 말하였다.
先生處勝之門下幾年於此矣.
선생처승지문하기년어차의.
“선생(先生)은 나 조승(趙勝)의 문하에 머무른 지 지금까지 몇 년(年)인가?”
趙勝(조승): 평원군(平原君)의 본명(本名).
毛遂曰.
모수왈.
모수가 말하였다.
三年於此矣.
삼년어차의.
“지금까지 삼 년 입니다.”
平原君曰.
평원군왈.
평원군이 말하였다.
夫賢士之處世也 譬若錐之處囊中 其末立見.
부현사지처세야 비약추지처낭중 기말립견.
“무릇 현명(賢明)한 사람의 세상(世上)을 살아감은, 비유(比喩)하자면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것의 끝이 바로 보인다네.
(뛰어난 사람은, 주머니 속에 송곳이 있는 것과 같아서, 그 송곳의 끝이 바로 드러난다네.)
今先生處勝之門下三年於此矣.
금선생처승지문하삼년어차의.
지금 선생은 나의 문하에 머무른 지 지금까지 삼 년이다.
左右未有所稱誦 勝未有所聞 是先生無所有也.
좌우미유소칭송 승미유소문 시선생무소유야.
측근(側近)이 아직 칭송(稱誦)하는 바가 없었고, 나는 아직 들은 바가 없으니, 이는 선생이 가진 것이 없는 것이오.
(주위(周圍)의 사람들이 그대를 칭송(稱誦)하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하며, 나 또한 아직 그대를 칭송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는 선생의 능력(能力)이 부족(不足)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先生不能 先生留.
선생불능 선생류.
선생은 할 수 없으니, 선생은 머무르시오.”
(이러한 선생과는 함께 갈 수가 없으니, 집에 계속(繼續) 머물러 계시오.)
毛遂曰.
모수왈.
모수가 말하였다.
臣乃今日請處囊中耳.
신내금일청처낭중이.
“신(臣)은 겨우 지금 주머니 속에 머무르기를 청하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이제서야 주머니 속에 넣어달라고 청하는 것일 뿐입니다.)
使遂蚤得處囊中 乃穎脫而出 非特其末見而已.
사수조득처낭중 내영탈이출 비특기말견이이.
만일 제가 일찍 주머니 속에 머무를 수 있었다면, 곧 자루가 끝이 벗어나서 나오고, 특(特)히 그 끝이 보이는 것뿐이 아닙니다.”
(만일 제가 일찍 주머니 속에 머무를 수 있었다면, 송곳의 끝 뿐만 아니라 송곳의 자루까지도 드러났을 것입니다.)
平原君竟與毛遂偕.
평원군경여모수해.
평원군은 결국(結局) 모수와 함께 동반(同伴)하였다.
十九人相與目笑之而未廢也.
십구인상여목소지이미폐야.
열아홉 명이 함께 눈짓을 하고 그를 비웃으며 그치지 아니하였다.
(나머지 열아홉 명의 사람들은 서로 눈짓을 하며 모수를 계속 비웃었다.)
※유의어(類義語):
- 군계일학(群鷄一鶴)
- 발군(拔群)
- 백미(白眉)
- 절륜(絶倫)
- 출중(出衆)
※반의어(反義語):
-
*고사성어(故事成語)의 의미(意味)와 유래(由來).
*원문(原文) / 해석(解釋) / 유의어(類義語) / 반의어(反義語).
*네이버 한자/중국어/국어 사전을 참고하여 풀이하였으며, 잘못된 해석이나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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