豹死留皮人死留名.
표사유피인사유명.
표(豹)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1) 훌륭한 사람의 이름은 오랜 세월(歲月)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뜻.
(신오대사(新五代史) 중에서……)
어(語)에 이르길,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충신을 알아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진실이로다.
오대십국(五代十國)이 난립했던 시기에는 ‘훌륭한 인물이 없었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절개를 지킨 선비 세 사람을 알고 있으며,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사절전(死節傳)을 지었다.
(중략)
장종(莊宗)이 왕언장(王彥章)를 보더니 말하였다.
“그대는 항상 나를 아이처럼 대하며 업신여겼었지. 그러나 오늘은 사로잡혔으니 패배를 인정하고 나에게 복종하겠는가?”
또 말하였다.
“그대는 싸움에 능한 사람인데, 어찌하여 연주(兗州)를 지키지 아니하고 중도(中都)를 지켰는가?
중도는 성벽과 성루가 없어서 지키기가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 왜 그곳을 지키려고 하였는가?”
왕언장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전쟁은 이미 끝났는데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소.”
장종은 왕언장을 가엾게 여겨 그를 정성껏 치료해 주었다.
왕언장은 무인이며 글을 알지 못하였는데, 그래서 항상 속담을 인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곤 하였다.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그것은 아아! 충성과 절의, 모두 타고난 성품이로다.
왕언장의 용맹함에 반했던 장종은 그를 온전히 살려 수하로 삼고자 하였다.
사람을 보내 왕언장을 회유하려 하였으나, 왕언장은 사양하며 말하였다.
“신이 폐하와 생사를 가리지 않고 치열하게 싸워 온 지가 벌써 십여 년입니다.
지금 패배하여 이렇게 사로잡혔는데, 죽음이 아니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또한 신은 양(梁)나라의 은혜를 받으며 살아왔으며, 그 은혜는 죽음이 아니면 갚을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이러한데 어찌 아침에는 양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진(晉)나라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내가 진나라를 섬긴다면 살면서 무슨 면목으로 세상 사람들을 대하겠습니까?
장종은 다시 명종(明宗)을 보내 왕언장의 마음을 돌리려 하였다.
왕언장은 상처가 깊어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고, 겨우 고개를 돌려 명종을 바라보더니 그의 어릴 적 이름을 부르며 말하였다.
“그대는 막길열(邈佶烈)이 아닌가?
더 말하지 말게. 나 왕언장이 어찌 구차하게 목숨만 연명하며 살겠는가?”
마침내 죽임을 당하니, 육십일 세였다.
진나라의 고조(高祖) 때 왕언장의 관위를 태사로 올려 주었다.
구양수(歐陽修)는 중국(中國) 송(宋)나라의 정치가(政治家)이자 문학가(文學家)입니다.
신오대사(新五代史)는 구양수를 포함(包含)한 여러 명(名)이 지은 역사책(歷史冊)으로, 중국 이십오사(二十五史)의 하나입니다.
이 신오대사의 사절전(死節傳)에는 자신(自身) 절조(節操)를 굽히지 않고 죽음을 택(擇)한 후량(後梁)의 장수(將帥) 왕언장(王彦章)에 대(對)한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왕언장은 일개(一介) 병졸(兵卒)로 시작(始作)하였으나, 뛰어난 실력(實力)으로 여러 전장(戰場)에서 수(數)많은 공(功)을 세워 장군(將軍)의 지위(地位)까지 올랐던 인물(人物)입니다. 무려 일백(一百) 근(听)이나 나가는 두 개(個)의 철창(鐵槍)을 자유자재(自由自在)로 다루어 왕철창(王鐵槍)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천하(天下)에 대적(對敵)할 자(者)가 없던 왕언장이었으나, 후당(後唐)의 장종(莊宗)이 대군(大軍)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 불과(不過) 오백여(五百餘) 명으로 도읍(都邑)을 지키다가 포로(捕虜)로 잡히게 되었습니다.
왕언장의 뛰어난 능력(能力)에 반한 장종이 그를 살려주고 수하(手下)로 거두려 하였으나, 왕언장은 끝내 거부(拒否)하고 죽음을 선택하였습니다.
‘표(豹)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뜻의 표사유피(豹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은 원래(元來)당시(當時)의 속담(俗談)으로, 신오대사에는 글을 배우지 못했던 왕언장이 평소(平素)에 즐겨 말하던 속담(俗談)이라고 기록(記錄)되어 있습니다.
원문(原文)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전(出典):
- 신오대사(新五代史) 권삼십이사절전제이십(卷三十二死節傳第二十)
※원문(原文):
語曰:「世亂識忠臣。」誠哉!五代之際,不可以為無人,吾得全節之士三人焉,作《死節傳》。
(中略)
唐兵攻兗州,末帝召彥章使守捉東路。是時,梁之勝兵皆屬段凝,京師只有保鑾五百騎,皆新捉募之兵,不可用,乃以屬彥章,而以張漢傑監之。彥章至遞坊,以兵少戰敗,退保中都;又敗,與其牙兵百餘騎死戰。唐將夏魯奇素與彥章善,識其語音,曰:「王鐵槍也!」舉槊刺之,彥章傷重,馬踣,被擒。莊宗見之,曰:「爾常以孺子待我,今日服乎?」又曰:「爾善戰者,何不守兗州而守中都?中都無壁壘,何以自固?」彥章對曰:「大事已去,非人力可為!」莊宗惻然,賜藥以封其創。彥章武人不知書,常為俚語謂人曰:「豹死留皮,人死留名。」其於忠義,蓋天性也。莊宗愛其驍勇,欲全活之,使人慰諭彥章,彥章謝曰:「臣與陛下血戰十餘年,今兵敗力窮,不死何待?且臣受梁恩,非死不能報,豈有朝事梁而暮事晉,生何面目見天下之人乎!」莊宗又遣明宗往諭之,彥章病創,臥不能起,仰顧明宗,呼其小字曰:「汝非邈佶烈乎?我豈茍活者?」遂見殺,年六十一。晉高祖時,追贈彥章太師。
※원문(原文) / 해석(解釋):
語曰 世亂識忠臣.
어왈 세란식충신.
어(語)에 이르길, ‘세상(世上)이 어지러우면 충신(忠臣)을 안다’라고 하였다.
(어(語)에 이르길, ‘세상(世上)이 어지러워지면 충신(忠臣)을 알아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誠哉.
성재.
진실(眞實)이로다.
五代之際 不可以為無人.
오대지제 불가이위무인.
오대(五代)의 시기(時期)는, ‘사람이 없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
(오대십국(五代十國)이 난립(亂立)했던 시기(時期)에는, ‘훌륭한 인물(人物)이 없었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
吾得全節之士三人焉 作死節傳.
오득전절지사삼인언 작사절전.
나는 절개(節槪)를 지킨 선비 세 사람을 알고, 사절전(死節傳)을 지었다.
(나는 절개(節槪)를 지킨 선비 세 사람을 알고 있으며, 이들을 기리기 위(爲)하여 사절전(死節傳)을 지었다.)
中略(중략)
莊宗見之 曰.
장종견지 왈.
장종(莊宗)이 그를 보더니, 말하였다.
(장종(莊宗)이 왕언장(王彥章)를 보더니, 말하였다.)
爾常以孺子待我 今日服乎?
이상이유자대아 금일복호?
“그대는 항상(恒常) 아이로서 나를 대(對)하였는데, 오늘은 복종(服從)하겠는가?”
(그대는 항상(恒常) 나를 아이처럼 대(對)하며 업신여겼었지. 그러나 오늘은 사로잡혔으니 패배(敗北)를 인정(認定)하고 나에게 복종(服從)하겠는가?)
又曰.
우왈.
또 말하였다.
爾善戰者 何不守兗州而守中都?
이선전자 하불수연주이수중도?
“그대는 싸움에 능(能)한 사람인데, 어찌하여 연주(兗州)를 지키지 아니하고 중도(中都)를 지켰는가?
中都無壁壘 何以自固?
중도무벽루 하이자고?
중도는 성벽(城壁)과 성루(城壘)가 없는데, 왜 스스로를 강화(强化)하였는가?”
(중도는 성벽(城壁)과 성루(城壘)가 없어서 지키기가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 왜 그곳을 지키려고 하였는가?)
彥章對曰.
언장대왈.
왕언장이 대답(對答)하여 말하였다.
大事已去 非人力可為.
대사이거 비인력가위.
“대사(大事)는 이미 지나갔으며, 사람의 힘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전쟁(戰爭)은 이미 끝났는데,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소.)
莊宗惻然 賜藥以封其創.
장종측연 사약이봉기창.
장종은 가엾게 여겨, 약(藥)을 줌으로써 그의 상처(傷處)를 막았다.
(장종은 왕언장을 가엾게 여겨, 그를 정성(精誠)껏 치료(治療)해 주었다.)
彥章武人不知書 常為俚語謂人曰.
언장무인부지서 상위리어위인왈.
언장은 무인(武人)이며 글을 알지 못하였는데, 항상 속담(俗談)을 행(行)하여 다른 사람에게 말하였다.
(왕언장은 무인(武人)이며 글을 알지 못하였는데, 그래서 항상 속담(俗談)을 인용(引用)하여 다른 사람에게 자신(自身)의 생각을 말하곤 하였다.)
豹死留皮 人死留名.
표사유피 인사유명.
“표(豹)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其於忠義 蓋天性也.
기오충의 개천성야.
그것은 아아! 충성(忠誠)과 절의(節義), 모두 타고난 성품(性品)이로다.
莊宗愛其驍勇 欲全活之 使人慰諭彥章 彥章謝曰.
장종애기효용 욕전활지 사인위유언장 언장사왈.
장종이 그의 용맹(勇猛)하고 날음을 아껴, 그를 온전(穩全)하게 살려주려고 하며, 사람을 시켜 언장을 위로(慰勞)하고 타일렀으나, 언장은 사양(辭讓)하며 말하였다.
(왕언장의 용맹(勇猛)함에 반했던 장종은, 그를 온전(穩全)히 살려 수하(手下)로 삼고자 하였다. 사람을 보내 왕언장을 회유(懷柔)하려 하였으나, 왕언장은 사양(辭讓)하며 말하였다.)
臣與陛下血戰十餘年 今兵敗力窮 不死何待?
신여폐하혈전십여년 금병패력궁 불사하대?
“신(臣)과 폐하(陛下)의 혈전(血戰)이 십여(十餘) 년(年), 지금(只今) 군대(軍隊)가 패(敗)하여 힘이 다하였는데, 죽지 아니하고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
(신(臣)이 폐하(陛下)와 생사(生死)를 가리지 않고 치열(熾烈)하게 싸워 온 지가 벌써 십여(十餘) 년(年)입니다. 지금(只今) 패배하여 이렇게 사로잡혔는데, 죽음이 아니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且臣受梁恩 非死不能報.
차신수양은 비사불능보.
또한 신은 양(梁)나라의 은혜(恩惠)를 받았는데, 죽음이 아니면 갚을 수 없습니다.
(또한 신은 양(梁)나라의 은혜(恩惠)를 받으며 살아왔으며, 그 은혜는 죽음이 아니면 갚을 수 없을 정도(程度)로 큽니다.)
豈有朝事梁而暮事晉.
기유조사양이모사진.
어찌 아침은 양나라를 섬겼지만 저녁은 진(晉)나라를 섬기겠습니까?
(이러한데 어찌 아침에는 양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진(晉)나라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生何面目見天下之人乎.
생하면목견천하지인호.
살아서 무슨 면목(面目)으로 천하(天下)의 사람을 대하겠습니까?”
(내가 진나라를 섬긴다면 살면서 무슨 면목(面目)으로 세상(世上) 사람들을 대하겠습니까?)
莊宗又遣明宗往諭之.
장종우견명종왕유지.
장종은 또 명종(明宗)을 보내 그를 회유(懷柔)하였다.
(장종은 다시 명종(明宗)을 보내 왕언장의 마음을 돌리려 하였다.)
彥章病創 臥不能起 仰顧明宗 呼其小字曰.
언장병창 와불능기 앙고명종 호기소자왈.
언장은 상처로 고생(苦生)하며, 누워서 일어날 수 없었고, 머리를 쳐들고 명종을 돌아보며, 그의 어릴 때의 이름을 부르며 말하였다.
(왕언장은 상처가 깊어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고, 겨우 고개를 돌려 명종을 바라보더니, 그의 어릴 적 이름을 부르며 말하였다.)
汝非邈佶烈乎? 我豈茍活者?
여비막길열호? 아기구활자?
“그대는 막길열(邈佶烈)이 아닌가? 내가 어찌 구차(苟且)하게 사는 것인가?”
(그대는 막길열(邈佶烈)이 아닌가? 더 말하지 말게. 나 왕언장이 어찌 구차(苟且)하게 목숨만 연명(延命)하며 살겠는가?)
遂見殺 年六十一.
수견살 년육십일.
마침내 죽임을 당하니, 육십일(六十一) 세(歲)였다.
晉高祖時 追贈彥章太師.
진고조시 추증언장태사.
진나라의 고조(高祖) 때, 언장을 태사(太師)로 추증(追贈)하였다.
(진나라의 고조(高祖) 때, 왕언장의 관위(官位)를 태사(太師)로 올려 주었다.)
※유의어(類義語):
- 호사유피인사유명(虎死留皮人死留名)
※반의어(反義語):
-
*고사성어(故事成語)의 의미(意味)와 유래(由來).
*원문(原文) / 해석(解釋) / 유의어(類義語) / 반의어(反義語).
*네이버 한자/중국어/국어 사전을 참고하여 풀이하였으며, 잘못된 해석이나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사성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渴而穿井(갈이천정) – 어떤 일이 생기기 전에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자기가 급해야 서두른다는 뜻. (0) | 2019.04.29 |
---|---|
畵龍點睛(화룡점정) –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마무리하여 완성시킴을 비유하는 말. (0) | 2019.04.28 |
土積成山(토적성산) – 작은 것도 많이 모이면 큰 것이 된다는 뜻. 작은 것이 쌓여 큰 것이 됨을 비유하는 말. (0) | 2019.04.26 |
春蚓秋蛇(춘인추사) – 글줄은 비뚤어지고 글씨는 졸렬함을 비유하는 말. (0) | 2019.04.25 |
池魚之殃(지어지앙) –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제삼자가 억울하게 재앙을 당함을 비유하는 말. (0) | 2019.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