采薇之歌.
채미지가.
고사리를 캐는 노래.
1) 절의지사(節義之士)의 노래.
*節義之士(절의지사): 절개(節槪), 지조(志操), 의(義)를 중요시(重要視)하는 선비.
(사기(史記) 백이열전(伯夷列傳) 중에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모두 고죽국(孤竹國) 왕의 아들이다.
아버지인 고죽군(孤竹君)은 셋째인 숙제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고죽군이 죽자 숙제는 첫째인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그러나 백이도 ‘셋째인 숙제가 왕위에 오른 것은 아버님의 명이니 어길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도망갔다.
숙제도 또한 첫째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여 즉위하지 않고 도망갔다.
고죽국의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둘째를 왕위에 즉위시켰다.
그리하여 백이와 숙제는 서백창(西伯昌)이 어른을 봉양할 줄 아는 바른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함께 가서 몸을 의탁하려고 하였다.
백이와 숙제가 서백창을 찾아갔을 때 서백창은 이미 죽은 뒤였고, 아들인 무왕(武王)이 아버지인 서백창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문왕(文王)이라 부르며 은(殷)나라를 정벌하러 가는 중이었다.
이를 본 백이와 숙제가 무왕의 군대를 가로막고 다음과 같이 간하였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다니, 이것이 자식 된 자의 올바른 도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은나라의 신하 된 자로서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죽이는 것이 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백이와 숙제를 죽이려 하였다.
태공(太公) 여상(呂尙)이 나서서 병사들을 가로막고 ‘이들은 의로운 사람들이다’라고 말을 하더니, 그들을 해치지 않고 무사히 돌려보냈다.
무왕이 얼마 뒤 은나라를 정벌하여 주왕의 무도함을 평정하니, 온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주(周)나라를 숭상하였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도리를 어긴 무왕을 부끄럽게 여기고 주나라의 곡식을 먹는 것은 의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세상을 피해 수양산의 깊은 곳에 숨어 살며 오직 고사리만 캐서 먹고 살았다.
굶주림에 지친 백이와 숙제는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끼고 노래를 지었다.
그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양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네.
■바르지 못한 자를 바르지 못한 자가 바로잡으면서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구나.
■신농씨(神農氏), 우(虞)임금, 하(夏)임금이 다스리던 좋은 세상은 어느새 사라지고,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아! 아! 결국 이렇게 죽는구나, 이것이 진정 우리의 운명이란 말인가!
결국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청백지사(淸白之士)는 청렴결백(淸廉潔白)한 선비를 뜻합니다. 절의지사(節義之士)는 절개(節槪)와 지조(志操), 그리고 의(義)를 중요시(重要視)하는 선비를 뜻합니다.
무경십서(武經十書)의 하나인 삼략(三略) 하략편(下略篇)에는 청백지사(淸白之士)와 절의지사(節義之士)에 대(對)한 내용(內容)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清白之士 不可以爵祿得.
청백지사 불가이작록득.
청백지사(清白之士)는 관직(官職)과 녹봉(祿俸)으로 얻을 수 없다.
節義之士 不可以威刑脅.
절의지사 불가이위형협.
절의지사(節義之士)는 위광(威光)과 형벌(刑罰)로 위협(威脅)할 수 없다.
故明君求賢 必觀其所以而致焉.
고명군구현 필관기소이이치언.
그래서 명군(明君)은 현자(賢者)를 구(求)할 때 반드시 그가 이루려고 하는 것을 본다.
致清白之士 修其禮, 致節義之士 修其道.
치청백지사 수기례, 치절의지사 수기도.
청백지사를 부르려면 예(禮)를 갖추어야 하고, 절의지사를 부르려면 도(道)를 갖추어야 한다.
然後士可致 而名可保.
연후사가치 이명가보.
그러한 뒤에야 선비를 부를 수 있고, 명분(名分)을 지키는 것이다.
‘절의지사(節義之士)의 노래’를 뜻하는 채미지가(采薇之歌)는 절의지사로 유명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죽어가며 지은 노래로, 사기(史記) 백이열전(伯夷列傳)에는 이와 관련(關聯)된 글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출전(出典):
- 사기(史記) 백이열전(伯夷列傳)
※원문(原文):
伯夷、叔齊,孤竹君之二子也。父欲立叔齊,及父卒,叔齊讓伯夷。伯夷曰:「父命也。」遂逃去。叔齊亦不肯立而逃之。國人立其中子。於是伯夷、叔齊聞西伯昌善養老,盍往歸焉。及至,西伯卒,武王載木主,號為文王,東伐紂。伯夷、叔齊叩馬而諫曰:「父死不葬,爰及干戈,可謂孝乎?以臣弒君,可謂仁乎?」左右欲兵之。太公曰:「此義人也。」扶而去之。武王已平殷亂,天下宗周,而伯夷、叔齊恥之,義不食周粟,隱於首陽山,采薇而食之。及餓且死,作歌。其辭曰:「登彼西山兮,采其薇矣。以暴易暴兮,不知其非矣。神農、虞、夏忽焉沒兮,我安適歸矣?于嗟徂兮,命之衰矣!」遂餓死於首陽山。
※원문(原文) / 해석(解釋):
伯夷叔齊 孤竹君之二子也.
백이숙제 고죽군지이자야.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이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모두 고죽국(孤竹國) 왕(王)의 아들이다.)
父欲立叔齊 及父卒 叔齊讓伯夷.
부욕립숙제 급부졸 숙제양백이.
아버지는 숙제를 세우고자 하였으나, 아버지가 죽음에 이르자, 숙제는 백이에게 양보(讓步)하였다.
(아버지인 고죽군은 셋째인 숙제에게 왕위(王位)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고죽군이 죽자, 숙제는 첫째인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讓步)하였다.)
伯夷曰. 父命也. 遂逃去.
백이왈. 부명야. 수도거.
백이는 “아버님의 명(命)입니다.”라는 말을 하더니 결국(結局) 도망(逃亡)하였다.
(그러나 백이도 ‘셋째인 숙제가 왕위에 오른 것은 아버님의 명(命)이니, 어길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도망(逃亡)갔다.)
叔齊亦不肯立而逃之.
숙제역불긍립이도지.
숙제도 또한 즉위하려 하지 않고 도망하였다.
(숙제도 또한 첫째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도리(道理)라고 생각하여 즉위하지 않고 도망갔다.)
國人立其中子.
국인립기중자.
그 나라 사람이 그의 둘째 아들을 세웠다.
(고죽국의 백성(百姓)들은 어쩔 수 없이 둘째를 왕위에 즉위시켰다.)
於是伯夷叔齊聞西伯昌善養老 盍往歸焉.
어시백이숙제문서백창선양로 합왕귀언.
그리하여 백이와 숙제는 서백창(西伯昌)이 어른을 훌륭하게 어른을 봉양(奉養)한다고 듣고, 함께 가서 몸을 의탁(依託)하였다.
(그리하여 백이와 숙제는 서백창(西伯昌)이 어른을 봉양(奉養)할 줄 아는 바른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함께 가서 몸을 의탁(依託)하려고 하였다.)
西伯昌(서백창): 주(周)나라의 문왕(文王).
及至 西伯卒 武王載木主 號爲文王 東伐紂.
급지 서백졸 무왕재목주 호위문왕 동벌주.
이르니, 서백(西伯)은 죽고, 무왕(武王)이 신주(神主)를 싣고, 문왕(文王)이라고 부르며, 동(東)쪽으로 가서 주왕(紂王)을 쳤다.
(백이와 숙제가 서백창을 찾아갔을 때, 서백창은 이미 죽은 뒤였고, 아들인 무왕(武王)이 아버지의 위패(位牌)를 수레에 싣고 문왕(文王)이라 부르며 은(殷)나라를 정벌(征伐)하러 가는 중(中)이었다.)
紂王(주왕): 고대(古代) 중국(中國)의 대표적(代表的)인 폭군(暴君)으로, 은(殷)나라(상(商)나라)의 마지막 임금.
伯夷叔齊叩馬而諫曰.
백이숙제고마이간왈.
백이와 숙제가 말을 잡아당기며 간(諫)하였다.
(이를 본 백이와 숙제가 무왕의 군대(軍隊)를 가로막고 다음과 같이 간(諫)하였다.)
父死不葬 爰及干戈 可謂孝乎.
부사부장 원급간과 가위효호.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장사를 지내지 않고, 바로 방패(防牌)와 창(槍)을 함께 하다니, 효(孝)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제대로 장례(葬禮)를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戰爭)을 일으키다니, 이것이 자식(子息) 된 자(者)의 올바른 도리(道理)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以臣弒君 可謂仁乎.
이신시군 가위인호.
신하(臣下)로서 왕을 죽이는 것을 인(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은나라의 신하(臣下) 된 자로서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죽이는 것이, 인(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左右欲兵之.
좌우욕병지.
측근(側近)이 그들을 죽이려 하였다.
(주위(周圍)에 있던 병사(兵士)들이 백이와 숙제를 죽이려 하였다.)
太公曰. 此義人也. 扶而去之.
태공왈. 차의인야. 부이거지.
태공(太公)이 ‘이들은 의인(義人)이다’라고 말하고, 도와서 그들을 보냈다.
(태공(太公) 여상(呂尙)이 나서서 병사들을 가로막고 ‘이들은 의(義)로운 사람들이다’라고 말을 하더니, 그들을 해(害)치지 않고 무사(無事)히 돌려보냈다.)
武王已平殷亂 天下宗周.
무왕이평은란 천하종주.
무왕은 얼마 뒤 은(殷)나라의 무도(無道)함을 평정(平定)하였고, 천하(天下)가 주(周)나라를 숭상(崇尙)하였다.
(무왕은 얼마 뒤 은(殷)나라를 정벌하여 주왕의 무도(無道)함을 평정(平定)하니, 온 세상(世上)의 사람들이 모두 주(周)나라를 숭상(崇尙)하였다.)
而伯夷叔齊恥之 義不食周粟,
이백이숙제치지 의불식주속,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의(義)는 주나라의 곡식(穀食)을 먹지 않는 것이니,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도리를 어긴 무왕을 부끄럽게 여기고, 주나라의 곡식(穀食)을 먹는 것은 의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隱於首陽山 采薇而食之.
은어수양산 채미이식지.
수양산(首陽山)에 은거(隱居)하여, 고사리를 캐서 그것을 먹었다.
(세상을 피(避)해 수양산(首陽山)의 깊은 곳에 숨어 살며, 오직 고사리만 캐서 먹고 살았다.)
及餓且死 作歌.
급아차사 작가.
굶주림에 이르러 거의 죽음에 가까워지자, 노래를 지었다.
(굶주림에 지친 백이와 숙제는,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끼고 노래를 지었다.)
其辭曰.
기사왈.
그 말은 다음과 같다.
(그 노래의 내용(內容)은 다음과 같다.)
■登彼西山兮 采其薇矣.
■등피서산혜 채기미의.
■저 서(西)쪽의 산(山)에 올라 그곳의 고사리를 캐자.
(수양산(首陽山)에 올라, 고사리를 캐네.)
■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
■이폭역폭혜 부지기비의.
■난폭(亂暴)함으로 난폭함을 바꾸면서,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잘못된 일을 잘못된 일로 바로잡으면서,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구나.)
(바르지 못한 자를 바르지 못한 자가 바로잡으면서,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구나.)
■神農虞夏忽焉沒兮 我安適歸矣.
■신농우하홀언몰혜 아안적귀의.
■신농씨(神農氏), 우(虞)임금, 하(夏)임금은 어느새 사라지고, 우리는 어느 곳에 향(鄕)하여 가는가?
(신농씨(神農氏), 우(虞)임금, 하(夏)임금이 다스리던 좋은 세상은 어느새 사라지고,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于嗟徂兮 命之衰矣.
■우차조혜 명지쇠의.
■아! 아! 죽는구나, 명(命)이 쇠(衰)하였도다!
(아! 아! 결국 이렇게 죽는구나, 운명(運命)이 사그라지는구나.)
(아! 아! 결국 이렇게 죽는구나, 이것이 진정(眞正) 우리의 운명(運命)이란 말인가!)
遂餓死於首陽山.
수아사어수양산.
결국 수양산(首陽山)에서 굶어 죽었다.
※유의어(類義語):
- 채미가(采薇歌)
※반의어(反義語):
-
*고사성어(故事成語)의 의미(意味)와 유래(由來).
*원문(原文) / 해석(解釋) / 유의어(類義語) / 반의어(反義語).
*네이버 한자/중국어/국어 사전을 참고하여 풀이하였으며, 잘못된 해석이나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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