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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長鋏歸來乎(장협귀래호) –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끝이 없는 욕심을 비유하는 말.


長鋏歸來乎.

장협귀래호.

긴 칼이 원래(元來) 있던 곳으로 다시 오는구나! 긴 칼아, 원래(元來)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자!

1) 만족(滿足)을 모르는 인간의 끝이 없는 욕심(慾心)을 비유(比喩)하는 말.

2) ‘자신의 재능(才能)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에게 알아봐 주기를 바라면서 하는 말.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중에서……)

 

맹상군(孟嘗君)의 이름은 문()이며, 성은 전씨(田氏)이다.

 

맹상군의 아버지는 정곽군(靖郭君) 전영()이라고 한다.

 

맹상군의 아버지인 전영은, ()나라 위왕(威王)의 막내아들이며 제나라 선왕(宣王)의 이복동생이다.

 

(중략)

 

맹상군이 설()에 있을 때 여러 제후들 문하에 있는 식객들과 도망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죄가 있는 사람들을 설로 불러들였고, 그들은 모두 맹상군에게 의탁하였다.

 

맹상군은 자신의 일도 버려둔 채 찾아온 모든 사람들을 융숭하게 대접하였고, 이 때문에 천하에는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맹상군의 집에 머무르던 식객들은 수천 명이나 되었으나, 신분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아니하고 모두 맹상군 등과 동일하게 대접하였다.

 

(중략)

 

처음에 풍환(馮驩)은 맹상군이 손님 접대(接待)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설에 찾아와서 맹상군을 뒤따라 다니다가 사람들 틈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맹상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풍환을 본 맹상군이 말하였다.

 

선생을 보아하니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을 듯한 사람인데,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해 줄 수 있소?”

 

풍환이 말하였다.

 

맹상군께서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중시하고 아낀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족하나마 작은 재주를 가지고 맹상군께 의탁하려 하오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맹상군은 풍환을 전사로 보내고 열흘 동안 내버려 두었다.

 

열흘이 지난 뒤, 맹상군이 전사의 책임자에게 물었다.

 

손님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사의 책임자가 대답하였다.

 

풍선생(馮先生)은 몹시 가난하여 오직 칼 한 자루만 들고 다니는데, 그 칼도 칼자루는 새끼줄로 감아서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그 칼을 두드리며 이렇게 노래를 부릅니다.

 

긴 칼아,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자! 밥은 있으나 함께 먹을 물고기 반찬이 없구나.’”

 

맹상군은 풍환을 행사로 옮겨 주었다. 그곳에는 음식에 물고기가 함께 나왔다.

 

닷새가 지난 뒤, 또 전사의 책임자에게 물었다.

 

전사의 책임자가 대답하였다.

 

손님이 다시 그 칼을 두드리며 이렇게 노래를 부릅니다.

 

긴 칼아,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자! 밖에 나가려 해도 타고 나갈 수레가 없구나.’”

 

맹상군은 풍환을 다시 대사로 옮겨 주었다. 그곳에는 드나들 때 수레를 탈 수 있었다.

 

닷새가 지난 뒤, 맹상군은 다시 전사의 책임자에게 물었다.

 

전사의 책임자가 대답하였다.

 

풍선생이 또 음식을 맛보더니 칼을 두드리며 이렇게 노래를 부릅니다.

 

긴 칼아,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자! 편하게 몸을 눕힐 집이 없구나.’”

 

화가 난 맹상군은 풍환의 말을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풍환은 그 뒤로도 일년 동안 맹상군의 집에 머물렀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맹상군(孟嘗君)중국(中國) 전국시대(戰國時代) ()나라의 왕족(王族)이었습니다. 제나라와 위()나라 그리고 진()나라에서 재상(宰相)을 지냈으며, 인재(人材)를 좋아하여 문하(門下)에 수()많은 식객(食客)을 거느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국시대 제나라의 맹상군(孟嘗君), ()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위나라의 신릉군(信陵君), ()나라의 춘신군(春申君)을 전국사군(戰國四君) 또는 전국사공자(全國四公子)라고 하는데, 이들은 모두 경쟁(競爭)하듯이 인재(人材)를 모아 대접(待接)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장협귀래호(長鋏歸來乎)와 관련(關聯)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풍환(馮驩)이라는 사람이 맹상군을 찾아와 식객으로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음식(飮食)과 잠자리가 맘에 들지 않았던 풍환은 차고 있던 칼을 두드리며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긴 칼아, 원래(元來)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자! 밥은 있으나 함께 먹을 물고기 반찬(飯饌)이 없구나.”

 

이 말을 전()해 들은 맹상군은 풍환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옮겨 주고 좋은 음식도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이에 만족(滿足)하지 못한 풍환은 다시 칼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고, 그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맹상군은 요구(要求)를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풍환의 지나친 요구가 계속 이어지자, 대접하기를 좋아하던 맹상군도 결국(結局) ()를 내며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긴 칼아,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자!라는 뜻의 장협귀래호는 이 이야기에서 유래(由來)된 고사성어(故事成語)입니다.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는 이어지는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후일(後日) 풍환은 어려웠던 시절(時節)에 자신(自身)이 바라는 대로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고 수레를 내주는 등()의 도움을 준 맹상군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채무증서(債務證書)를 불태워 맹상군이 민심(民心)을 얻을 수 있도록 한 일도 있었으며, 또 맹상군이 재상(宰相)의 지위(地位)에서 쫓겨났을 때 복직(復職)을 위()해 큰 공()을 세우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문(原文)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전(出典):

-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원문(原文):

孟嘗君名文,姓田氏。文之父曰靖郭君田。田者,齊威王少子而齊宣王庶弟也。

(中略)

孟嘗君在薛,招致諸侯賓客及亡人有罪者,皆歸孟嘗君。孟嘗君舍業厚遇之,以故傾天下之士。食客數千人,無貴賤一與文等。

(中略)

初,馮驩聞孟嘗君好客,躡蹻而見之。孟嘗君曰;「先生遠辱,何以文也?」馮驩曰:「聞君好士,以貧身歸於君。」孟嘗君置傳舍十日,孟嘗君問傳舍長曰:「客何所?」答曰:「馮先生甚貧,猶有一劍耳,又。彈其劍而歌曰『長鋏歸來乎,食無魚』。」孟嘗君遷之幸舍,食有魚矣。五日,又問傳舍長。答曰:「客復彈劍而歌曰『長鋏歸來乎,出無輿』。」孟嘗君遷之代舍,出入乘輿車矣。五日,孟嘗君復問傳舍長。舍長答曰:「先生又嘗彈劍而歌曰『長鋏歸來乎,無以家』。」孟嘗君不悅。

 

居朞年,馮驩無所言。

 

※원문(原文) / 해석(解釋):

 

孟嘗君名文 姓田氏.

맹상군명문 성전씨.

맹상군(孟嘗君)의 이름은 문()이며, ()은 전씨(田氏)이다.

 

文之父曰靖郭君田.

문지부왈정곽군전영.

문의 아버지는 정곽군(靖郭君) 전영()이라고 한다.

(맹상군의 아버지는 정곽군(靖郭君) 전영()이라고 한다.)

 

齊威王少子而齊宣王庶弟也.

전영자 제위왕소자이제선왕서제야.

전영이라는 사람은, ()나라 위왕(威王)의 막내아들이며 제나라 선왕(宣王)의 이복(異腹)동생이다.

(맹상군의 아버지인 전영은, ()나라 위왕(威王)의 막내아들이며 제나라 선왕(宣王)의 이복(異腹)동생이다.)

 

中略(중략)

 

孟嘗君在薛 招致諸侯賓客及亡人有罪者,

맹상군재설 초치제후빈객급망인유죄자,

맹상군이 설()에 있을 때, 제후(諸侯)의 빈객(賓客), 도망(逃亡)다니는 사람, 죄가 있는 사람을 불러들였고,

(맹상군이 설()에 있을 때, 여러 제후(諸侯)들 문하(門下)에 있는 식객(食客)들과 도망(逃亡)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죄가 있는 사람들을 설로 불러들였고,)

 

皆歸孟嘗君.

개귀맹상군.

맹상군에게 모두 의탁(依託)하였다.

(그들은 모두 맹상군에게 의탁(依託)하였다.)

 

孟嘗君舍業厚遇之 以故傾天下之士.

맹상군사업후우지 이고경천하지사.

맹상군은 일을 내버려두고 그들을 후()하게 대접(待接)하였고, 이 때문에 천하(天下)의 선비를 압도(壓倒)하였다.

(맹상군은 자신(自身)의 일도 버려둔 채 찾아온 모든 사람들을 융숭(隆崇)하게 대접(待接)하였고, 이 때문에 천하(天下)에는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食客數千人 無貴賤一與文等.

식객수천인 무귀천일여문등.

식객(食客)은 수천(數千) ()이었고, 귀천(貴賤)을 따지지 아니하고 문 등()과 동일(同一)하였다.

(맹상군의 집에 머무르던 식객(食客)들은 수천(數千) ()이나 되었으나, 신분(身分)이나 지위(地位)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아니하고 모두 맹상군 등()과 동일(同一)하게 대접하였다.)

 

中略(중략)

 

初 馮驩聞孟嘗君好客 躡蹻而見之.

초 풍환문맹상군호객 섭교이현지.

처음, 풍환(馮驩)은 맹상군이 손님 접대(接待)를 좋아한다고 듣고, 뒤따라가다가 발뒤꿈치를 들고 그를 보았다.

(처음에, 풍환(馮驩)은 맹상군이 손님 접대(接待)를 좋아한다는 소문(所聞)을 듣고, 설에 찾아와서 맹상군을 뒤따라 다니다가 사람들 틈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맹상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孟嘗君曰.

맹상군왈.

맹상군이 말하였다.

(풍환을 본 맹상군이 말하였다.)

 

先生遠辱 何以文也.

선생원욕 하이교문야.

“선생(先生)은 치욕(恥辱)을 멀리하는데, 무엇으로 나를 가르치겠는가?”

(선생을 보아하니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을 듯한 사람인데,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해 줄 수 있소?)

//(?) (선생(先生)은 멀리서 찾아오느라 몹시 고생(苦生)스러운 일을 겪었는데,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려 하시오?)

(): 전문(田文). 맹상군(孟嘗君)의 본명(本名).

 

馮驩曰.

풍환왈.

풍환이 말하였다.

 

聞君好士 以貧身歸於君.

문군호사 이빈신귀어군.

“군()께서 선비를 아끼신다고 들어서, 부족(不足)한 몸을 가지고 군에게 의탁(依託)합니다.

(맹상군께서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중시(重視)하고 아낀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족(不足)하나마 작은 재주를 가지고 맹상군께 의탁하려 하오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孟嘗君置傳舍十日.

맹상군치전사십일.

맹상군은 전사(傳舍)에 십일(十日) 동안 방치(放置)하였다.

(맹상군은 풍환을 전사(傳舍)로 보내고 열흘 동안 내버려 두었다.)

 

孟嘗君問傳舍長曰.

맹상군문전사장왈.

맹상군이 전사의 장()에게 물었다.

(열흘이 지난 뒤, 맹상군이 전사의 책임자(責任者)에게 물었다.)

 

客何所.

객하소위.

“손님이 하는 바가 무엇인가?”

(손님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答曰.

답왈.

대답(對答)하여 말하였다.

(전사의 책임자가 대답하였다.)

 

馮先生甚貧 猶有一劍耳 又.

풍선생심빈 유유일검이 우괴구.

“풍선생(馮先生)은 몹시 가난하여, 오직 하나의 칼만 있을 뿐이며, 새끼줄로 묶어 칼자루를 감았습니다.

(풍선생(馮先生)은 몹시 가난하여, 오직 칼 한 자루만 들고 다니는데, 그 칼도 칼자루는 새끼줄로 감아서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彈其劍而歌曰.

탄기검이가왈.

그 칼을 두드리고 노래하며 말합니다.

(그런데 그 칼을 두드리며 이렇게 노래를 부릅니다.)

 

‘長鋏歸來乎 食無魚.’

‘장협귀래호 식무어.’

‘긴 칼이 원래(元來) 있던 곳으로 다시 오는구나! 밥을 먹는데 물고기가 없네.’”

(긴 칼아, 원래(元來)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자! 밥은 있으나 함께 먹을 물고기 반찬(飯饌)이 없구나.)

 

孟嘗君遷之幸舍 食有魚矣.

맹상군천지행사 식유어의.

맹상군은 그를 행사(幸舍)로 옮겼고, 음식은 물고기가 있었다.

(맹상군은 풍환을 행사(幸舍)로 옮겨 주었다. 그곳에는 음식에 물고기가 함께 나왔다.)

 

五日 又問傳舍長.

오일 우문전사장.

다섯 번()째 날, 또 전사의 장에게 물었다.

(닷새가 지난 뒤, 또 전사의 책임자에게 물었다.)

 

答曰.

답왈.

대답하여 말하였다.

(전사의 책임자가 대답하였다.)

 

客復彈劍而歌曰.

객부탄검이가왈.

“손님이 다시 칼을 두드리고 노래하며 말합니다.

(손님이 다시 그 칼을 두드리며 이렇게 노래를 부릅니다.)

 

‘長鋏歸來乎 出無輿.’

‘장협귀래호 출무여.’

‘긴 칼이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오는구나! 나가는데 수레가 없네.’”

(긴 칼아,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자! 밖에 나가려 해도 타고 나갈 수레가 없구나.)

 

孟嘗君遷之代舍 出入乘輿車矣.

맹상군천지대사 출입승여차의.

맹상군은 그를 대사(代舍)로 옮겼고, 나가고 들어오며 수레를 탔다.

(맹상군은 풍환을 다시 대사(代舍)로 옮겨 주었다. 그곳에는 드나들 때 수레를 탈 수 있었다.)

 

五日 孟嘗君復問傳舍長.

오일 맹상군부문전사장.

다섯 번째 날, 맹상군은 다시 전사의 장에게 물었다.

(닷새가 지난 뒤, 맹상군은 다시 전사의 책임자에게 물었다.)

 

舍長答曰.

사장답왈.

()의 장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전사의 책임자가 대답하였다.)

 

先生又嘗彈劍而歌曰.

선생우상탄검이가왈.

선생이 또 음식을 맛보더니 칼을 두드리고 노래하며 말합니다.

(풍선생이 또 음식을 맛보더니 칼을 두드리며 이렇게 노래를 부릅니다.)

 

‘長鋏歸來乎 無以.’

‘장협귀래호 무이위가.’

‘긴 칼이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오는구나! 집으로 여길 것이 없구나.’”

(긴 칼아,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자! (便)하게 몸을 눕힐 집이 없구나.)

 

孟嘗君不悅.

맹상군불열.

맹상군은 기쁘지 아니하였다.

(()가 난 맹상군은 풍환의 말을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居朞年 馮驩無所言.

거기년 풍환무소언.

(滿) 일년(一年)을 머물렀으나, 풍환은 전()혀 말하지 않았다.

(풍환은 그 뒤로도 일년(一年) 동안 맹상군의 집에 머물렀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유의어(類義語):

- 거어지탄(車魚之歎)

- 계학지욕(溪壑之慾)

- 기마욕솔노(騎馬欲率奴)

- 득롱망촉(望蜀)

- 차청차규(借廳借閨)

 

※반의어(反義語):

-

 

 

 

 

*고사성어(故事成語)의 의미(意味)와 유래(由來).

*원문(原文) / 해석(解釋) / 유의어(類義語) / 반의어(反義語).

*네이버 한자/중국어/국어 사전을 참고하여 풀이하였으며, 잘못된 해석이나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