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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鐵面皮(철면피) – 부끄러움을 모르고 뻔뻔스러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


鐵面皮.
철면피.
쇠로 만든 낯가죽. 쇠처럼 두꺼운 낯가죽.
1) 부끄러움을 모르고 뻔뻔스러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

 



(북몽쇄언(北夢瑣言) 중에서……)


진사 왕광원(王光遠)은 권세가와 호족을 찾아다니며 아부하는 짓을 일삼았다.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그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에게 심한 매질이나 모욕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권세가와 호족들을 찾아가 아부하는 짓을 멈추지 않았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왕광원의 낯짝은 열 겹의 쇠로 만든 갑옷처럼 두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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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宋史) 열전제칠십오(列傳第七十五) 중에서......)


조변(趙抃)은 자가 열도(閱道)이며, 구주의 서안 사람이다.


진사에 급제하여 무안군 절도추관이 되었다.


(중략)


한림학사 증공량(曾公亮)은 천거하여 전중시어사의 지위에 올랐다.


권력이 있는 사람이나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죄상을 조사하여, 여러 사람 앞에 명백하게 공개하여 말하고 매우 철저하고 바르게 법을 적용하였다.


당시 도읍의 사람들은 높은 사람들 앞에서도 쇠로 만든 갑옷을 얼굴에 두른 것처럼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던 그를 철면어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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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몽쇄언(北夢瑣言)은 중국(中國) 송(宋)나라의 손광헌(孫光憲)이 당말(唐末) 오대(五代) 시기(時期)의 사회(社會) 풍속(風俗)과 문인(文人)들의 일화(逸話)를 모은 책(冊)입니다.


이 책에는 출세욕(出世慾)이 지나쳤던 진사(進士) 왕광원(王光遠)에 대(對)한 이야기도 실려 있습니다.


왕광원은 스스로 노력(努力)하여 높은 지위(地位)에 오르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권력(權力) 있는 호걸(豪傑)들을 찾아다니며 아부(阿附)를 일삼았습니다.


여러 호걸들 중(中)에는 이러한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심(甚)하게 매질을 하거나 모욕(侮辱)을 주기도 하였으나, 왕광원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북몽쇄언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왕광원의 이러한 행동(行動)을 보고 당시(當時)의 사람들이 ‘왕광원은 얼굴이 열 겹의 쇠로 만든 갑옷처럼 두껍다’라고 말하며 비웃었다고 기록(記錄)되어 있는데, 철면피(鐵面皮)는 이 이야기에서 유래(由來)된 고사성어(故事成語)입니다.


참고(參考)로, 송사(宋史)에는 철면피(鐵面皮)와 비슷한 철면(鐵面)이라는 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관리(官吏)들을 감찰(監察)하는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의 지위에 있던 조변(趙抃)이라는 사람이 지위(地位)의 고하(高下)를 막론(莫論)하고 항상(恒常) 당당(堂堂)하게 죄(罪)를 조사(調査)하여 사람들이 그를 철면어사(鐵面御史)라고 불렀다는 내용(內容)으로, 진사 왕광원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여기에서는 철면이 ‘강직(剛直)하다 또는 준엄(峻嚴)하다’의 좋은 뜻으로 사용(使用)되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大部分) ‘부끄러움을 모르고 뻔뻔스러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원문(原文)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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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出典):
- 북몽쇄언(北夢瑣言) (원문 찾지 못함. 인터넷 검색 자료 참고함.)
- 송사(宋史) 열전제칠십오(列傳第七十五)


※원문(原文):


- 북몽쇄언(北夢瑣言)


進士王光遠,幹索權豪無厭,或遭撻唇,略無改悔。時人雲:「光遠顏厚如十重鐵甲。」


- 송사(宋史) 열전제칠십오(列傳第七十五) 19, 20


趙抃,字閱道,衢州西安人。進士及第,為武安軍節度推官。人有赦前偽造印,更赦而用者,法吏當以死。抃曰:「赦前不用,赦後不造,不當死。」讞而生之。知崇安、海陵、江原三縣,通判泗州。濠守給士卒廩賜不如法,聲欲變,守懼,日未入,輒閉門不出。轉運使檄抃攝治之,抃至,從容如平時,州以無事。


翰林學士曾公亮未之識,薦為殿中侍御史,彈劾不避權幸,聲稱凜然,京師目為「鐵面御史。」其言務欲朝廷別白君子小人,以謂:「小人雖小過,當力遏而絕之;君子不幸詿誤,當保全愛惜,以成就其德。」溫成皇后之喪,劉沆以參知政事監護,及為相,領事如初。抃論其當罷,以全國體。又言宰相陳執中不學無術,且多過失;宣徽使王拱辰平生所為及奉使不法;樞密使王德用、翰林學士李淑不稱職;皆罷去。吳充、鞠真卿、刁約以治禮院吏,馬遵、呂景初、吳中復以論梁適,相繼被逐。


※원문(原文) / 해석(解釋):


북몽쇄언(北夢瑣言)


進士王光遠 幹索權豪無厭,
진사왕광원 간색권호무염,
진사(進士) 왕광원(王光遠)은, 권세가(權勢家)와 호족(豪族)을 찾는 것을 하며 싫어하지 않았는데,
(진사(進士) 왕광원(王光遠)은, 권세가(權勢家)와 호족(豪族)을 찾아다니며 아부(阿附)하는 짓을 일삼았다.)


或遭撻辱 略無改悔.
혹조달욕 약무개회.
어떤 경우(境遇)에는 매질과 모욕(侮辱)을 당(當)하였으나, 거의 잘못을 고치지 않았다.
(어떤 경우(境遇)에는 이러한 그의 행동(行動)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에게 심(甚)한 매질이나 모욕(侮辱)을 당(當)하기도 하였으나, 권세가와 호족들을 찾아가 아부하는 짓을 멈추지 않았다.)


時人云.
시인운.
그 당시(當時)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光遠顏厚如十重鐵甲.
광원안후여십중철갑.
“광원(光遠)의 얼굴은 열 겹의 철갑(鐵甲)처럼 두껍다.”
(왕광원의 낯짝은 열 겹의 쇠로 만든 갑(甲)옷처럼 두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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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宋史) 열전제칠십오(列傳第七十五)


趙抃 字閱道 衢州西安人.
조변 자열도 구주서안인.
조변(趙抃)은 자(字)가 열도(閱道)이며, 구주(衢州)의 서안(西安) 사람이다.


進士及第 為武安軍節度推官.
진사급제 위무안군절도추관.
진사(進士)에 급제(及第)하여, 무안군(武安軍) 절도추관(節度推官)이 되었다.


中略(중략)


翰林學士曾公亮未之識 薦為殿中侍御史,
한림학사증공량미지식 천위전중시어사,
한림학사(翰林學士) 증공량(曾公亮)은 그와 친분(親分)이 없었으나, 천거(薦擧)하여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가 되었는데,
(한림학사(翰林學士) 증공량(曾公亮)은 천거(薦擧)하여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의 지위(地位)에 올랐다.)


彈劾不避權幸 聲稱凜然 京師目為鐵面御史.
탄핵불피권행 성칭름연 경사목위철면어사.
탄핵(彈劾)하며 권력(權力)과 총애(寵愛)를 무서워하지 않았으며, 공언(公言)하고 매우 엄(嚴)하여, 도읍(都邑)의 뭇사람들이 보고 철면어사(鐵面御史)라고 여겼다.
(권력(權力)이 있는 사람이나 임금의 총애(寵愛)를 받는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죄상(罪狀)을 조사(調査)하여, 여러 사람 앞에 명백(明白)하게 공개(公開)하여 말하고 매우 철저(徹底)하고 바르게 법(法)을 적용(適用)하였다. 당시(當時) 도읍(都邑)의 사람들은 높은 사람들 앞에서도 쇠로 만든 갑(甲)옷을 얼굴에 두른 것처럼 두려워하는 기색(氣色)이 없던 그를 철면어사(鐵面御史)라고 불렀다.)


※유의어(類義語):
- 강안(强顔)
- 과렴선치(寡廉鮮恥)
- 면장우피(面張牛皮)
- 후안무치(厚顔無恥)


※반의어(反義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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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故事成語)의 의미(意味)와 유래(由來).
*원문(原文) / 해석(解釋) / 유의어(類義語) / 반의어(反義語).
*네이버 한자/중국어/국어 사전을 참고하여 풀이하였으며, 잘못된 해석이나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