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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宋襄之仁(송양지인) –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베푸는 어리석은 인정을 뜻하는 말.


宋襄之仁.
송양지인.
송(宋)나라 양공(襄公)의 어짊/어진 마음씨/인정(仁情).
1) 자신(自身)의 분수(分數)도 모르고 베푸는 어리석은 인정(人情)을 뜻하는 말.
2) 불필요(不必要)한 인정(人情)을 베풀다가 오히려 자신(自身)을 해(害)침을 비유(比喩)하는 말.

 



(춘추좌전(春秋左傳) 중에서……)


겨울, 십일월 기사일 새벽에 송(宋)나라의 양공(襄公)이 초(楚)나라와 전쟁을 하기 위해 군대를 거느리고 홍양에 도달하였다.


송나라의 군대는 대열을 갖추었으나 초나라의 군대는 홍수를 건너는 중이었다.


사마가 말하였다.


“적군은 많고 아군은 적습니다. 적군이 홍수를 건너는 틈을 타서 공격해야 합니다.”


양공이 말하였다.


“안 된다.”


초나라의 군대가 무사히 홍수를 건너고 대열을 정비하고 있을 때에 사마가 다시 초나라 군대의 상황을 보고하자, 양공이 말하였다.


“아직 안 된다”


초나라의 군대가 대열을 갖춘 뒤에 공격을 시작하였으나, 송나라의 군대는 크게 패하여 양공은 다리를 다치고 호위하던 병사들까지 모두 잃었다.


양공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대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군자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나이가 많은 노인을 괴롭히지 않는다.


예부터 군자는 전쟁을 하더라도 어려움에 처한 적은 공격하지 아니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었다.


과인이 비록 망한 나라의 후손이지만 과인도 군자라네.


나는 싸울 준비가 덜 된 적은 공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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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춘추시대(春秋時代) 때의 일입니다. 송(宋)나라와 초(楚)나라가 홍양(泓陽)에서 맞붙게 되었습니다.


먼저 도착(到着)한 송나라의 군대(軍隊)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대열(隊列)을 정비(整備)한 뒤에 초나라의 군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초나라의 군대가 강(江)을 건너고 있을 때에 송나라의 사마(司馬)가 양공(襄公)에게 공격(攻擊)할 것을 건의(建議)하였으나, 양공이 허락(許諾)하지 아니하여 승리(勝利)할 수 있는 좋은 기회(機會)를 놓쳤습니다.


강을 무사(無事)히 건너온 초나라의 군대가 대열을 미처 갖추지 못하였을 때에 사마가 다시 공격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양공은 또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양공은 초나라의 군대가 싸울 준비(準備)를 마친 뒤에 공격을 시작(始作)하였으나, 두 번(番)의 좋은 기회를 놓친 송나라의 군대는 결국(結局) 크게 패(敗)하였습니다.


좋은 기회를 놓치고 크게 패했다는 소식(消息)을 들은 사람들이 양공을 비난(非難)하였고, 이에 양공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군자(君子)는 어려움에 처(處)한 사람을 해(害)치지 않으며, 나이가 많은 노인(老人)을 괴롭히지 않는다. 예부터 군자는 전쟁을 하더라도 어려움에 처(處)한 적은 공격하지 아니하고 정정당당(正正堂堂)하게 승부(勝負)를 겨루었다. 과인(寡人)이 비록 망(亡)한 나라의 후손(後孫)이지만 과인도 군자라네. 싸울 준비(準備)가 덜 된 적(敵)은 공격하지 않는다.”


전투(戰鬪)에서 크게 다쳤던 양공은 얼마 뒤에 세상(世上)을 떠났습니다. 쓸데없이 베푼 인정(人情)으로 인(因)하여 양공은 송나라를 위험(危險)에 처(處)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결국(結局) 목숨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송나라 양공의 어짊’이라는 뜻의 송양지인(宋襄之仁)은 춘추좌전(春秋左傳)에 실려 있는 이 이야기에서 유래(由來)된 고사성어(故事成語)로, 원문(原文)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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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出典):
- 춘추좌전(春秋左傳) 희공(僖公) 희공이십이년(僖公二十二年)
- 십팔사략(十八史略)


※원문(原文):
楚人伐宋以救鄭,宋公將戰,大司馬固諫曰,天之棄商久矣,君將興之,弗可赦也已,弗聽。
冬,十一月,己已,朔,宋公及楚人戰于泓,宋人既成列。
楚人未既濟,司馬曰,彼眾我寡,及其未既濟也,請擊之。公曰,不可,既濟而未成列,又以告,公曰,未可,既陳而後擊之,宋師敗績,公傷股,門官殲焉,國人皆咎公,公曰,君子不重傷,不禽二毛,古之為軍也,不以阻隘也,寡人雖亡國之餘,不鼓不成列,子魚曰,君未知戰,勍敵之人,隘而不列,天贊我也,阻而鼓之,不亦可乎,猶有懼焉,且今之勍者,皆吾敵也,雖及胡耇,獲則取之,何有於二毛,明恥教戰,求殺敵也,傷未及死,如何勿重。若愛重傷,則如勿傷。愛其二毛,則如服焉,三軍以利用也,金鼓以聲氣也,利而用之,阻隘可也聲盛致志,鼓儳可也。


※원문(原文) / 해석(解釋):


冬 十一月 己巳 朔 宋公及楚人戰于泓.
동 십일월 기사 삭 송공급초인전우홍.
겨울, 십일월(十一月), 기사일(己巳日), 새벽, 송공(宋公)이 초(楚)나라의 사람과 홍(泓)에서 싸웠다.
(겨울, 십일월(十一月) 기사일(己巳日) 새벽에, 송(宋)나라의 양공(襄公)이 초(楚)나라와 전쟁(戰爭)을 하기 위(爲)해 군대(軍隊)를 거느리고 홍양(泓陽)에 도달(到達)하였다.)


宋人既成列 楚人未既濟.
송인기성열 초인미기제.
송(宋)나라의 사람은 이미 열(列)을 완성(完成)하였고, 초나라 사람은 아직 건너는 것을 마치지 못하였다.
(송나라의 군대는 대열(隊列)을 갖추었으나, 초나라의 군대는 홍수(泓水)를 건너는 중(中)이었다.)


司馬曰.
사마왈.
사마(司馬)가 말하였다.


彼眾我寡 及其未既濟也 請擊之.
피중아과 급기미기제야 청격지.
“그들은 많고 우리는 우리들은 적으니, 그들이 아직 건너는 것을 마치지 못함을 틈타서, 그들을 공격(攻擊)하십시오.”
(적군(敵軍)은 많고 아군(我軍)은 적으니, 적군이 홍수를 건너는 틈을 타서, 공격(攻擊)해야 합니다.)


公曰.
공왈.
공(公)이 말하였다.
(양공이 말하였다.)


不可.
불가.
“안 된다.”


既濟而未成列 又以告 公曰.
기제이미성열 우이고 공왈.
건너는 것을 마쳤으나 아직 열을 완성하지 못하였는데, 다시 보고(報告)하자, 공이 말하였다.
(초나라의 군대가 무사(無事)히 홍수를 건너고 대열을 정비(整備)하고 있을 때에, 사마가 다시 초나라 군대의 상황(狀況)을 보고(報告)하자, 양공이 말하였다.)


未可.
미가.
“아직 안 된다”


既陳而後擊之 宋師敗績 公傷股 門官殲焉.
기진이후격지 송사패적 공상고 문관섬언.
진열(陳列)하는 것을 마치고 그런 뒤에 그들을 공격하였으나, 송나라의 군대는 대패(大敗)하였고, 공은 넓적다리를 다쳤으며, 문관(門官)은 멸(滅)하였다.
(초나라의 군대가 대열을 갖춘 뒤에 공격을 시작(始作)하였으나, 송나라의 군대는 크게 패(敗)하여, 양공은 다리를 다치고, 호위(護衛)하던 병사(兵士)들까지 모두 잃었다.)


國人皆咎公 公曰.
국인개구공 공왈.
나라의 사람이 모두 공을 나무라자, 공이 말하였다.
(양공이 좋은 기회(機會)를 놓치고 대패했다는 소식(消息)을 들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非難)하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君子不重傷 不禽二毛.
군자불중상 불금이모.
“군자(君子)는 거듭하여 해(害)치지 아니하며, 이모(二毛)는 사로잡지 아니한다.
(군자는 어려움에 처(處)한 사람을 해(害)치지 않으며, 나이가 많은 노인(老人)을 괴롭히지 않는다.)


古之爲軍也 不以阻隘也.
고지위군야 불이조애야.
옛날의 군대를 다스림은, 험(險)하고 좁음을 생각하지 아니하였다.
(예부터 군자는 전쟁을 하더라도, 어려움에 처(處)한 적은 공격하지 아니하고 정정당당(正正堂堂)하게 승부(勝負)를 겨루었다.)


寡人雖亡國之餘 不鼓不成列.
과인수망국지여 불고불성열.
과인(寡人)이 비록 망국(亡國)의 나머지이지만, 열을 완성하지 못한 것에게 (공격의 시작을 알리는) 북을 두드리지 않는다.”
(과인(寡人)이 비록 망(亡)한 나라의 후손(後孫)이지만 과인도 군자라네. 나는 싸울 준비(準備)가 덜 된 적(敵)은 공격하지 않는다.)


※유의어(類義語):
-


※반의어(反義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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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故事成語)의 의미(意味)와 유래(由來).
*원문(原文) / 해석(解釋) / 유의어(類義語) / 반의어(反義語).
*네이버 한자/중국어/국어 사전을 참고하여 풀이하였으며, 잘못된 해석이나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